안녕하세요, 저는 트리퍼예요. 제 인사가 너무 뜬금없다고 느껴졌나요? 하지만 제가 트리퍼라는 사실은 지금부터 진행할 이야기에 있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이에요. 만약 제가 트리퍼가 아니었다면…… 하다못해 트립하는 세계의 기억을 공유하지 못했다면, 특수한 상황에 영향을 받았다면 이 이야기는 아주 크게 달라졌겠죠. 긴 배경 설명을 구구절절 할 생각은 없어요. 중요한 건 그러한 설정 따위가 아니니까요. 저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내 죽음을 슬퍼해주었죠. 저는 어떻게 생각했냐면…… 글쎄요. 더 이상 연인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은 슬프지만, 죽음 자체는 그다지 새롭지도 않거든요. 죽음으로 세계를 이동하는 건 늘 있던 일이니까요. 아, 그래요. 다시 강조하겠습니다. 저는 보통 죽고 나서, 세계를 이..
11.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었을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후루야 레이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후루야 레이와 비슷한 상실을 겪은 사람. 그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다정하고 선한 사람. 그는 유하를 만난 이후로 단 한 번도 그녀의 미소를 잊은 적 없다. 그러니 곁에 있어줄 수 없다면 적어도 그녀가 행복했으면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들 옆에서 아프지 않고 죽음을 걱정할 일도, 바랄 일도 없이 그저 웃음만 있어도 충분한 삶을 살길 바랐다.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아니, 그렇게 살고 있다고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그는 만족할 수 있었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고, 욕심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똑똑히 알고 있다. 그는 유하와 함께 지냈던 짧은 기억만으..
1. 유하가 죽었다.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사고사였다. 아무도 그 순간,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당사자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녀는 미처 인식하지도 못할 짧은 순간에 깔끔하게 사망했다. 죽음이 거짓말인 것처럼 평온한 연인의 시체 앞에서 후루야 레이는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장례식은 크지 않았지만, 사람이 많았다. 멀리는 학교 동창들, 옛 출판사 직원들부터 가까이는 가장 친한 친구들까지, 한 번이라도 유하를 스쳐지나갔던 사람들은 빠짐없이 장례식에 참석해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다. 훌쩍이는 에노모토 아즈사, 연인의 품에 안겨있는 모리 란과 그런 그녀를 달래주는 쿠도 신이치, 한껏 침울해진 하네다 슈키치와 미야모토 유미와…… 힘없이 서로에게 기대있는 시타나 하루나와 레야..
시타나 하루나는 핸드폰을 든 채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화면에 뜬 이름은 아무로 토오루. 그녀가 친구 애인의 번호를 띄워놓고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고뇌하게 된 사정을 알기 위해서는 한 시간 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 날은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유하의 포와로 아르바이트는 오전까지였고, 하루나는 당당히 유하의 팔짱을 끼고 온갖 곳을 돌아다녔다. 옷을 쇼핑하거나, 카페에 들러 달달한 것을 먹거나 하면서. 그러니까, 그 때까지만 해도 그것은 정말이지 평범하고 기분 좋은 친구들의 데이트였던 것이다. 그러나 데이트는 저녁 식사를 하기 전 잠깐 들른 서점에서 산산조각났다. 베이카 시의 시민들이라면 무릇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당연하게도 용의자는 셋으로 줄었고, 하필이면 그 중 하나가..